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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 6월 25일, 모든 게 바뀐 날
    기타이슈 2025. 6. 2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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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6월 25일, 새벽. 서울 하늘에 갑작스런 포성이 울렸다. 그 한 발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며칠 후, 서울은 텅 비었다. 길을 따라 줄지어 내려가는 사람들. 손에 쥔 건 옷보자기 몇 개뿐. 말 그대로, 도시 전체가 떠났다. 전쟁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삶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엔 사람이 있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 남을 것인가.
    그 질문은 누구에게도 쉽게 주어진 선택지가 아니었다.

    오늘은 6월 25일.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기념식, 회고 콘텐츠들이 나온다. 어릴 적엔, 학교 방송이나 행사가 익숙할 정도로 가까운 기억이었지만,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그냥 지나가는 하루가 되었다. 전쟁 자체보다도,

    그 시대를 직접 겪었던 할머니 세대의 삶이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갈라진 나라, 갈라진 이념, 갈라진 삶

    우리는 흔히 남북이 '이념' 때문에 갈렸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막상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이념'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다. 실상은 이념보다 위치가 더 결정적이었다.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내려왔을 때, 개성, 연천, 철원 같은 접경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자동으로 '북쪽 사람'이 됐다. 그들은 이념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지리적 위치 때문에 체제가 바뀐 것이다.

     

    그리고 이른 시기 점령된 남한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역시 전쟁 발발 3일 만에 함락됐고, 남쪽으로 피난을 가지 못한 수많은 이들이 하루아침에 북한 치하로 들어갔다.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은 내려갔고, 어떤 사람은 남았다.
    피난은 곧 생존의 문제였지만, 피난조차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이든 부모님을 두고 갈 수 없어서, 생업을 포기할 수 없어서, 아니면 그저 곧 돌아올 거야라는 희망 때문에.

    또는 원래도 방문이 되었는데, 우리 한나라인데? 이런 나뉜 나라 자체가 아직 생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혹은 금방 다시 합쳐 질 것이라는 생각이 당연했기 때문에 더더욱.


    점령지의 일상, 바뀐 나라에 남겨진 사람들

    북한이 점령한 지역에서는 단기간에 통치 체제를 만들기 위해 '좌익 인사'를 지명해 남한 지역을 장악했다. 문제는, 그 '좌익'이라는 이름 아래에 무차별적인 숙청과 검거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남로당 출신 인물들이 인민위원장 등의 직함을 받아 각 지역을 통제했고, 그들은 보복의 논리로 좌우를 가리지 않고 체포하거나 고문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과거 경찰이었던 사람, 교사, 면서기였던 사람들은 반동분자로 몰려 끌려가기도 했다.

    이들은 "너는 옛날에 일본 앞잡이 노릇했다", "친미 반동이다", "양반 출신이다" 같은 죄목으로 인민재판을 받고, 대개는 변호의 기회도 없이 구타와 고문을 당하거나 심지어 처형됐다.

    문제는 진짜 좌익이었는지, 억울하게 엮였는지 구분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전쟁은 이념의 싸움이었지만, 현장에서 벌어진 건 생존을 둘러싼 폭력의 연속이었다.


    '이념'은 나중 문제였다

    오늘날 우리는 쉽게 말한다. "그때는 남쪽으로 내려왔어야지", "빨갱이들이었지"라고.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겐 '이념'은 너무 멀고, 너무 생소한 단어였다.

    북한을 지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려올 수 없었기에 남았고,
    체제를 선택해서가 아니라, 그 땅이 바뀌었기에 억지로 끌려간 것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동네 이장이 인민위원장이 되어 있었고,
    동네 교사가 반동분자로 몰려 트럭에 실려 갔다.

    그 사이사이에,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이 있었다.
    부역자도 아니었고, 영웅도 아니었던 사람들.
    그저 그 땅에 살았다는 이유로,
    그리고 피난을 떠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삶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들.


    전쟁의 본질은 선택할 수 없던 사람들의 이야기

    6.25 전쟁은 단지 전선에서 총을 들고 싸운 병사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전쟁이 정말로 무서운 이유는, 가만히 있던 사람의 일상에까지 무자비하게 들이닥친다는 것이다.

    전선이 바뀌면 나라가 바뀌고, 나라는 곧 법이 되고, 법은 총이 된다.
    그리고 그 총은 종종, 총을 들지 않은 사람을 향한다.

    그래서 전쟁을 기억한다는 건,
    총을 들었던 사람을 추모하는 것을 넘어서
    총을 들 수 없었던 사람들, 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 6월 25일.
    우리가 묵념해야 할 대상은 어쩌면 '이념'이 아니라
    그저 삶을 지키고자 했던 이름 없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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