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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는 누구의 역사일까? 민족의 역사 땅의 역사Insight 2025. 6. 24. 02:05반응형
"고구려는 우리 역사야."
아마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고, 광개토대왕과 같이 중국 중원으로 영토를 확장했던 고구려의 역사는 늘 자랑스럽게 여겨져 왔다. 삼국 가운데서도 고구려의 인기는 독보적이다.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같은 상상도 자주 오르내리고, 드라마 ‘주몽’이나 ‘태왕사신기’는 한때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그 감정을 대변하기도 했다.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구려가 우리나라 역사라는 건, 한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믿으며 컸던 건 아닐까?
그런데 역사를 민족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 논리는 어디까지 유효할까? 발해는 고구려 유민이 세운 나라이긴 해도, 대부분의 활동 무대가 지금의 한반도 밖이었다. 만주 지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정작 한반도 남부는 통일신라의 영역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당연하게 발해를 ‘우리 역사’로 배운다. 고구려의 후예라는 이유로. 그렇다면 땅은 중요하지 않은 걸까?
반대로, 중국이 고구려나 발해를 자기 역사라고 주장하면 우리는 무조건 틀렸다고 말한다.
그 주장의 어떤 점이 잘못된 걸까?
역사는 민족을 기준으로 봐야 하는 걸까, 아니면 땅을 기준으로 봐야 하는 걸까?
혹은 땅에 역사는 중요하지 않고 민족으로만 봐야하는걸까?
나는 그렇다면 수많은 반례가 생길거 같다
🧭 우리는 민족 중심으로 기억한다
고구려를 우리 역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민족의 흐름'을 따라 역사를 배웠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부여와 고조선의 후계자였고, 결국 신라와 고려로 이어진다고 배운다. 역사책은 하나의 민족이 긴 시간 동안 나라를 바꾸며 이어진다고 그려준다.
그렇기에 고구려를 다른 나라 역사로 본다는 건, 뿌리를 부정당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의 민족 정체성은 이 흐름 위에 세워져 있다.
✨ 민족 중심이면, 이런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까?
만약 민족 중심의 시각이 전부라면, 우리는 다음 사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 한나라의 낙랑군
중국 한나라가 설치한 식민 통치 기관이었던 낙랑군. 그런데 당시의 한사군은 지금으로 보면 도시국가 개념에 가까웠다. 한족이 이 땅에 들어와 정권을 세운 셈이다.→ 그렇다면 낙랑군은 중국의 역사인가? 아니면 우리 역사인가? 민족 중심으로 본다면 한족의 역사이니 중국사다. 하지만 우리는 낙랑 지역에서 일어난 문화와 흔적을 한국사에서도 다룬다. 그렇다면 땅의 역사로도 접근하고 있는 셈이다.
2. 제주도의 탐라국
탐라국은 고려도 신라도 아닌 독립된 나라였고, 민족 기원도 다르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탐라를 '우리 역사'로 배운다.→ 왜 탐라는 자연스럽게 우리 역사일까? 단지 지금 제주도에 속해 있어서? 혹은 우리가 이 땅을 통치한 시간이 오래되어서 자연스러워진 걸까?
그렇다면 반대로 질문할 수 있다. 중국 내 조선족은 지금도 중국 영토 안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들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일까?
또는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어떻게 볼까? 민족적으로는 한족이 아니지만, 지금 중국 땅을 다스렸으니 중국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울까?
결국 문제는 단순히 ‘민족이냐 땅이냐’가 아니라, 그 역사 속 주체가 누구였는지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다.
중국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그들도 우리 민족이었다”는 식으로 정체성까지 흡수하려 하기 때문에 갈등이 커지는 것이다.
중국의 입장은 땅의 역사? 정체성의 흡수?
중국은 '소수민족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라고 말한다.
내몽골이 있으면 원나라도 자기 역사고, 만주족의 청나라도 포함된다. 지금은 한족 중심이지만, 그때는 오히려 외부 민족에게 지배당했을 수도 있다. 그런 정권도 포함시키는 이유는 단 하나 지금의 중국 영토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고구려도 중국의 지방정권이었고, 고구려인은 곧 중국 소수민족이라는 논리까지 나아간다. 단순한 공간의 기억이 아니라 정체성의 흡수로 가는 것이다.
만약 반대로 생각해 보자.
한국인이 유럽 한가운데에서 100년간 나라를 세웠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그 나라를 분명 우리 역사로 기억할 것이다. 동시에, 그 땅을 가진 유럽 국가는 자신들의 역사로도 가르칠 것이다. 그 나라 안에서 건물을 짓고, 문화를 남기고, 제도를 운영했다면 그 기억은 단순히 한국인만의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역사이기도 하다.이처럼 공간을 기준으로 한 역사 서술은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한다. 문제는 그것이 정체성까지 흡수하는 방식으로 확장될 때, 정치적인 충돌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중국의 입장은 땅의 역사? 정체성의 흡수?
중국은 '소수민족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라고 말한다. 내몽골이 있으면 원나라도 자기 역사고, 만주족의 청나라도 포함된다. 지금은 한족 중심이지만, 그때는 오히려 외부 민족에게 지배당했을 수도 있다. 그런 정권도 포함시키는 이유는 단 하나 — 지금의 중국 영토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고구려도 중국의 지방정권이었고, 고구려인은 곧 중국 소수민족이라는 논리까지 나아간다. 단순한 공간의 기억이 아니라 정체성의 흡수로 가는 것이다.
만약 반대로 생각해 보자.
한국인이 유럽 한가운데에서 100년간 나라를 세웠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그 나라를 분명 우리 역사로 기억할 것이다.
동시에, 그 땅을 가진 유럽 국가는 자신들의 역사로도 가르칠 것이다. 그 나라 안에서 건물을 짓고, 문화를 남기고, 제도를 운영했다면 그 기억은 단순히 한국인만의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처럼 공간을 기준으로 한 역사 서술은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한다. 문제는 그것이 정체성까지 흡수하는 방식으로 확장될 때, 정치적인 충돌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즉, 고구려라는 '나라'의 역사를 공유하는 건 가능하다. 그러나 '고구려인의 정체성'까지 중국으로 흡수하려는 시도는 분명히 문제다.
⚖️ 결국 우리는 두 가지 기준이 모두 필요하다
민족 중심의 역사도 중요하다. 그래야 정체성과 흐름이 생긴다. 하지만 땅 중심의 역사도 함께 봐야 한다. 그래야 더 넓고 깊은 관점에서 '나'와 '이웃'을 함께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단지 '나의 조상'을 기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이 땅에서 어떤 이야기가 있었고, 누구와 함께 살아왔는지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국가의 3요소는 땅, 국민, 주권이다. 우리는 국민이 이어온 역사를 배우기도 하지만, 땅 위에서 일어난 일들도 함께 배운다. 그 땅에 살았던 나라와 사람들, 문화와 제도 역시 우리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이다.
역사는 하나의 시선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질문을 던지는 순간, 역사는 확장된다.
“고구려는 우리 역사이다”라고 말하는 건 전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거기서 한 발짝 나아가, “그 고구려가 있었던 땅에서 살았던 모든 이들의 역사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민족으로 기억하고, 중국은 땅으로 기억한다. 이 둘은 충돌하기도 하고, 함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 '고구려라는 나라'의 기억을 공유하는 걸 넘어서, '고구려인의 정체성'까지 자국화하려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 역사'로 기억하려 한다면, 그 대상은 '땅'까지만이어야 한다. 그 땅에 있던 나라였으니 '그 지역의 역사'로 공유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거기 살았던 사람들까지, 마치 중국인인 것처럼 규정하는 건 과도한 정체성의 흡수이자 역사 왜곡이다.
그럴 때, 우리는 진짜로 역사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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