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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한국엔 지역색이 없을까?
    Insight 2025. 6. 19.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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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유럽과 일본을 여행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도시마다 정말 다른 느낌을 준다는 점이었다.

    이탈리아만 해도 로마는 웅장하고, 베니스는 낭만적이며, 피렌체는 예술이 흐른다. 도시마다 역사와 공기가 다르다. 심지어 길거리 벤치의 모양까지 다르고, 벽의 질감에서도 그 도시의 정체성이 느껴졌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교토는 전통과 정갈함, 오사카는 활기와 상업, 후쿠오카는 여유와 따뜻함이 있다.

    프랑스도 그렇다. 파리, 리옹, 마르세유가 다르고, 간판·건축·사람들 표정까지 도시 고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그런데 우리는? 서울, 대구, 광주, 부산을 가도 똑같은 브랜드 간판, 똑같은 아파트 단지, 똑같은 프랜차이즈 카페다. 지역 고유의 표정은 희미하고, 도시의 감성은 표준화되어 있다. '그저 위치만 다른 복붙 도시'에 사는 기분이다.


    📌 도시가 모두 비슷해진 이유는?

    ① 획일적인 도시계획

    한국의 도시들은 대부분 택지개발지구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이 방식은 과거의 지형, 생활사, 공간 구조를 철저히 무시한 채, 인구 수용을 최우선으로 하는 틀을 우선시한다.
    과거의 골목은 사라지고, 대신 직선형 도로와 정해진 면적의 아파트 단지들이 주거공간을 대체한다. 그 결과, 어떤 도시에 가더라도 ‘비슷한 도로 폭’, ‘비슷한 구조의 단지’, ‘정해진 커뮤니티센터’가 등장한다.
    이는 도시를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아닌, ‘행정이 관리하기 쉬운 구조물’로 만든다. 도시 고유의 맥락이나 서사는 사라지고, 복사-붙여넣기식 공간만 남는다.

    ② 프랜차이즈 위주의 상권

    ‘창업 열풍’이 불고 자영업자는 늘고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절반 이상은 프랜차이즈 점포다.
    창업을 해도 결국 이미 검증된 브랜드, 이미 정해진 인테리어, 이미 구성된 메뉴판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지역의 고유한 식당, 카페, 책방이 설 자리는 줄어든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서울에서 본 프랜차이즈가 제주에서도 똑같이 등장하고, 강릉에서 본 카페가 대전에서도 똑같이 존재한다.
    상권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로컬의 멋’이 아닌 ‘본사의 기준’이 도시의 얼굴이 된다.

    ③ 규제 중심의 디자인

    지역마다 건축 디자인, 간판 색상, 건물 외관까지 일정한 규제를 받는다. 물론 도시 미관을 위한 기준은 필요하지만, 과도한 통일성 추구는 창의성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예를 들어, 한옥이 많은 골목에 외관이 부조화되는 철제 간판이 등장하지 못하게 하는 건 필요하지만, 반대로 모든 간판이 회색, 하늘색, 노란색 등으로만 통일되는 식의 규제는 오히려 도시의 색감을 빼앗는다.

    더불어 건물 높이, 조도 규제, 외장재 기준 등이 지역의 역사나 자연 풍경과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면서, 결국 모든 건물이 비슷한 모습으로 완성된다.
    이런 디자인의 행정 주도도시의 ‘표정’을 사라지게 만든다.

    ④ 역사적 맥락의 부재

    한국의 도시들은 수차례의 ‘파괴와 재건’을 겪었다.
    조선 말기에는 중앙권력의 약화로 도시 기능이 마비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수탈에 맞춘 도시 재편이 강제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6.25 전쟁으로 도시 대부분이 잿더미가 되었다.

    그 이후는 군사정권의 효율 중심 재건. ‘얼마나 빨리 아파트를 짓고, 얼마만큼 도로를 낼 수 있는가’가 정책의 기준이 되었다.

    그 결과, 도시는 사람의 기억을 품지 못하고 ‘기능만 남은 공간’으로 바뀌었다.
    로마의 유적처럼 “과거를 간직한 채 현재를 사는 도시”가 아닌, 과거를 지우고 미래만 추구하는 도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 속도와 효율이 만든 도시 풍경

    1970~90년대 산업화와 주택난 속에서 도시 설계는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이때 탄생한 도시 구조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도시계획은 사람의 삶보다 행정의 편의를 우선시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감성은 자라나기 어렵다.

    이제는 '다양한 도시'가 아닌, '표준화된 도시'가 되어간다. 도로 너비, 신호등 간격, 벤치 위치, 상점 거리까지 복사된 듯한 풍경. 다른 삶의 방식이 사라진 도시는 사람의 상상력까지 평준화시킨다.


    🧭 지역 소멸은 결국 정체성의 소멸

    청년 유출 → 고령화 → 기능 약화의 악순환은 단지 인구 문제만이 아니다.
    도시에 이야기와 감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도시가 살아있으려면 단순히 사람이 많이 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서사’가 흐르는 공간이어야 한다.

    전주는 예외다. 전통시장, 한옥마을, 전통음식, 도시재생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살아있는 도시 브랜드’를 만들었다.
    전주는 더 이상 하나의 지명이 아니라, 고유한 이미지와 이야기로 기억되는 도시다.

    하지만 이런 성공사례는 드물다. 대부분의 도시는 “우리도 전주처럼!”만 외칠 뿐, 정작 껍데기만 복제할 뿐이다.
    한옥 느낌의 기와만 올려놓고, 표지판만 바꾸는 방식으로는 지역의 감성을 되살릴 수 없다.

     

     

    🇯🇵🇪🇺유럽과 일본은 왜 다를까?

    유럽은 오랜 시간 동안 가문과 영주 중심의 도시국가 체제를 유지해왔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만 해도 근대 이전까지는 각 지역이 독립적인 문화권을 이루었고, 지금도 ‘중앙집권 국가’로서의 역사보다 ‘지방 중심 사회’로서의 기억이 더 강하다.
    국가 통일된 역사가 길지 않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만큼 지역 단위의 문화 자율성과 감성이 유지되어 온 것이다.

    일본 역시 비슷하다. 에도 막부 이전까지 일본은 다이묘(영주) 중심의 지역 분권 체제였고, 메이지 유신을 거쳐 중앙집권 체제로 전환된 것도 불과 150년 전의 일이다.


    그래서 교토, 오사카, 후쿠오카 등은 각각의 지역성이 강하게 남아 있고, 오늘날에도 실질적인 지방자치와 예산 집행 권한이 주어진다.
    도시 간 경쟁보다는 ‘공존’의 문화가 가능한 구조다.

     

    반면 한국은 구조적으로 다르다. 삼국시대조차 고작 3개의 나라였고, 이후 삼국시대 → 고려 → 조선 → 대한제국 →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며 천 년 이상 중앙집권 체제가 유지됐다.
    백제와 신라로 나뉘었던 것도 오래전의 일이고, 지금까지도 전라도와 경상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지역 고유의 ‘정체성 실험’이나 ‘자치적 시도’는 매우 적었다. 이또한 정치로 인해 나뉘어진거지 갔을때 다른 느낌을 주진 않는다.


    특히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행정구조 자체가 식민통치에 맞춰져 있었고, 해방 후에도 중앙정부 주도의 획일화된 구조가 이어졌다.

    결국 한국은 오랜 시간 ‘하나의 체계’, ‘하나의 기준’ 안에서 운영된 사회였고, 지금도 대부분의 도시는 중앙정부의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다.
    도시가 자율적으로 기획되지 못하고, ‘기획된 기준’을 반복적으로 따르는 풍경만 남게 된 배경이다.

     

    ✨ 우리가 바꿔야 할 것들

     

    1) 도시마다 시도할 수 있는 여유
    한 도시가 실패해도 괜찮은 사회.
    다양한 디자인, 다양한 규제 실험을 허용하는 유연한 구조가 필요하다.

    2) 청년에게 공간을 줄 것
    지방 청년에게 임대료 부담 없이 공간을 나눠줘야 한다.
    공간이 곧 가능성이고, 그 공간에서 도시의 감성이 자란다.

    3) 행정 중심이 아닌 이야기 중심
    행정의 효율보다 지역의 감성을 이야기해야 한다.
    도시는 기술이 아니라 정서로 기억되는 공간이어야 한다.


    🔍 도시가 똑같으면, 삶도 똑같다

    출퇴근, 배달, 백화점, 프랜차이즈.
    복사된 일상은 삶에 의문을 지우고, 감정을 단순화시킨다.
    질문 없는 삶, 감정 없는 도시. 그게 정말 ‘잘 사는 삶’일까?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왜 우리는 어디든 똑같은 도시를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도 바뀌어야 한다.

    도시가 바뀌어야, 삶도 바뀔 수 있다.
    이제는 건물의 높이보다 이야기의 깊이가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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