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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댓말이 만든 창의성의 한계 – 갤럭시는 만들지만 애플은 못된다?
    Insight 2025. 6. 16.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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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댓말이 창의성을 막는다면

    우리는 어려서부터 말의 높이를 배운다. 누구에게는 높이고, 누구에게는 낮춘다. 말투가 곧 예의라고 배운다. 그리고 그 예의 안에서, 생각을 표현한다.

    한국 사회의 존댓말 문화는 배려와 질서의 언어다. 어른을 존중하고, 상하 관계를 정리하며, 집단 내 갈등을 줄여왔다. 하지만 그 언어 습관이 때로는 의견을 말하기 전에 스스로를 검열하는 장치가 된다.

    그건 단지 말투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하는 방식과, 표현하는 태도의 문제다. 이 글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존댓말이 어떻게 창의성과 토론을 제약하는 구조가 되는지를 천천히 풀어보고자 한다.


    📌 ‘먼저 말하는 사람’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

    서양에서 'teacher'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무엇을 가르치느냐’와 ‘어떻게 토론하느냐’다. 학생은 질문하고, 교사는 답하며, 때로는 반박받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선생님’은 다르다. ‘먼저 태어나 경험과 지식을 쌓은 사람’이다.

    그 자체로 존경의 대상이고, 권위가 부여된다. 

    학생은 단지 배우는 입장이다. 배움에는 틀림이 없고, 말대꾸는 무례가 된다.

    그 구조 안에서 질문은 자취를 감춘다.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도, 먼저 “맞습니다”로 시작해야 하는 분위기가 생긴다. 그건 단지 교실 안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사무실, 회의실, 심지어 가족 내에서도 반복된다.

    그런 사회에서 새로운 생각은 조심스러워지고, 낯선 발상은 불편한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말은 부드러워지고, 의견은 무난해진다. 창의성은 그런 말투 속에서 서서히 눌린다.


    📌 존댓말은 대화를 늦추고, 논쟁을 누른다

    존댓말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다. 하지만 동시에 주도권을 내려놓는 태도가 되기도 한다. “그 말도 맞습니다”로 시작하는 토론은, 결국 어느 쪽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한 채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에서 토론이 어렵다는 말은 익숙하다. 그 이유는 논리 부족이나 표현력 때문이 아니라, 논쟁 자체를 꺼리는 문화 때문이다.

    강한 주장보다 공감이 우선이고, 정답보다는 분위기를 맞추는 쪽이 ‘예의’로 여겨진다. 그래서 말끝은 흐려지고, 반론은 유보된다. 그건 언어의 형식이면서, 동시에 사고의 방향이다.

    말을 높이면, 생각도 높인다. 그리고 높인 생각은 쉽게 건드릴 수 없다.

    그렇게 한국 사회는 조용하지만 답답한 회의, 질서 있지만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는 발표문을 반복하게 된다.


     

    📌 시키는 일은 잘하는데, 새로운 건 약하다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은 조직에서 유능한 평가를 받는다. 정해진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시 없이도 뭔가를 '스스로 시작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이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우리는 늘 누군가를 높여야 한다. 생각보다 아이디어보다 말투를 먼저 정비해야 한다. “이거 어떤가요?”보단 “혹시 이렇게 바꿔보는 건 어떠세요?”처럼 말이다. 그래서 의견보다 타이밍을 고민하게 되고, 결국 자기 생각은 뒤로 미뤄진다.

     

    이런 흐름은 회사 생활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상사는 ‘이런 느낌으로 해줘’라고 말하지만, 하급자가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면 “왜 내 말대로 안 했냐”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림은 상사의 머릿속에 있고, 맞춰야 하는 건 직원의 몫이다.

     

    게다가 한국 남성의 군 복무 경험은 이런 위계 문화를 더 공고하게 만든다. 철저한 상하 구분과 명령 체계 속에서 2년을 보내다 보면, 윗사람의 말은 반박 대상이 아니라 수용 대상이 된다. 사실 그렇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회사에서 부적응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그래서 수평 구조를 시도하는 기업도 생겼다. 계급을 없애고, 직급 대신 이름을 부르자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름 뒤에도 “~님”이 붙고, 모두가 “했어요?”라고 말한다. 겉보기에는 평등해졌지만, 존댓말이라는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다.

    내가 다녔던 건설회사도 그랬다. 상사들은 대부분 반말을 했고, 아이디어를 내도 ‘지시를 어겼다’는 프레임이 먼저 따라왔다. 그 안에서는 새로운 제안이 나오기 어렵다. 존중이 아니라 통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시키는 일은 잘하지만, 새로운 걸 설계하기는 어렵다. 갤럭시는 기능적으로는 최고지만, 애플 다음에서야 만들었다. 삼성은 잘 만들었지만, 애플은 처음 만들었다.

    LG전자의 세탁기와 냉장고는 세계적으로 우수하다. 하지만 백색가전을 처음 설계한 건 미국이다. 우리는 뛰어난 후발주자였고, 그 구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말의 높이는 생각의 방향을 만든다

    창의성은 단순히 아이디어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구조다. 그리고 언어는 그 구조의 핵심이다.

    말을 높이면, 관계가 생긴다. 관계가 생기면, 권위가 따라온다. 권위는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다른 생각은 조심스러운 것이 된다.

    결국 말은 행동을 제한하고, 사고의 폭도 그 언어의 틀 안에서 줄어든다.

    그래서 존댓말은 단순히 예의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사고의 리듬과 감정의 표현 방식까지 포함하는 총체적 구조다.


    💡 더 이상 농경사회가 아니라면

    우리는 더 이상 마을 공동체 안에서 살지 않는다. 연장자 중심의 질서, 대가족의 위계, 농경사회의 협업 논리는 이제 산업사회와 정보사회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말은 여전히 농경사회의 틀을 갖고 있다. 존댓말과 반말이라는 이분법은 단지 어투가 아니라 인간관계를 구분짓는 기제가 됐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인은 훌륭한 파트너다. 성실하고 정직하다. 하지만 외국인이 보기에 우리는 때때로 너무 조용하고, 질문이 없다.

    그건 단지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말대꾸 하지 마’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어왔다. ‘먼저 이야기하지 말고, 기다려라’는 훈련을 받아왔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말의 높낮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사고를 제한하는 장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창의성은 표현에서 시작된다. 표현은 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말은, 높이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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