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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럽이 먼저 발전했을까?Insight 2025. 6. 18. 05:20반응형
얼마 전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참 놀란 기억이 있다. 로마, 파리, 런던과 같은 도시를 걷다 보면 중세에 지어진 건물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고, 거리 곳곳엔 각각의 시대와 역사를 품은 유적과 흔적들이 뚜렷하게 살아 있다.
그 건물들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지금의 유럽 사회를 만든 ‘배경’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것들은 다 유럽에 있을까?
기술, 과학, 철학, 예술, 제도 등 우리가 ‘근대 문명’이라 부르는 것들의 대부분은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역사 시간에 중국의 위대한 왕조, 조선의 정교한 행정 시스템, 아시아의 풍부한 철학을 배웠지만, 정작 근대의 문턱을 넘은 것은 유럽이었다.
가로형 대륙이 낳은 교류와 확장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나는 ‘지리적 구조’에서 중요한 힌트를 발견했다. 유럽과 아시아는 같은 유라시아 대륙에 속해 있지만, 유럽은 상대적으로 ‘가로형’ 구조에 가깝다. 즉, 동서로 긴 형태이며 위도가 비슷한 국가들이 많다. 위도가 비슷하면 기후대도 비슷하다. 이는 곧 농업 기술, 가축 사육, 건축 기술, 의약 지식 등이 빠르게 퍼질 수 있는 토양이 된다는 뜻이다.
반면 아프리카나 아메리카는 ‘세로형 대륙’이다. 위도가 크게 달라, 같은 작물도 북쪽과 남쪽에서 생존 방식이 다르다. 기술의 전파 속도도 느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문명의 성장 속도를 결정짓는 배경이 되었다.
나라가 많아야 경쟁도 많다
유럽을 지도로 보면 확실히 독특한 구조라는 걸 알 수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처럼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나라들이 마치 블록처럼 촘촘하게 붙어 있다. 문제는 단순한 지리적 근접성이 아니라, 정치 체제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이해관계도 늘 충돌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웃들끼리 전쟁과 동맹, 경쟁과 배신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비극이지만, 역설적으로 과학과 체계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무기를 더 멀리, 더 빨리,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기술은 진보하고, 행정과 물류는 정비된다.
어느 한 나라가 앞서가기 시작하면, 주변 국가들도 따라가지 않으면 금세 뒤처진다. 이 치열한 생존 경쟁이 유럽 전체의 수준을 함께 끌어올리는 구조가 된 셈이다. 그렇게 유럽은 서로를 견제하고 자극하면서, 빠르게 근대화로 나아갈 수 있었다.
조선의 평화, 일본의 긴장
비슷한 대비는 동아시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은 약 200년간 큰 전쟁이 거의 없었던 ‘안정의 나라’였다. 유교를 바탕으로 한 문치주의 사회는 체계적이고 정적인 문화를 꽃피웠지만, 동시에 군사력과 실용 기술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 평화는 좋지만, 경쟁이 없으면 발전의 동력도 약해진다.
반면 일본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전국시대라는 오랜 내전기를 겪으며, 작은 다이묘들이 살아남기 위해 무기, 성곽, 전략을 끊임없이 발전시켰다. 그런 환경 속에서 실용적 사고와 기술 지향적인 문화가 자라났고, 이는 나중에 임진왜란에서 일본이 준비된 군사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기반이 되었다.
편안함이 계속되면 창의성은 말라버린다
누군가는 말한다. “통일되고 평화로운 나라가 더 부강하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너무 오랫동안 안정된 구조는, 새로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매뉴얼대로, 관례대로 움직인다. 실패를 피하려고 하고, 도전을 꺼린다.
나는 이민자들이나 교포들이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에겐 기댈 곳이 없다.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나 역시 힘들 때 더 집중하고, 더 집요하게 살아가는 편이다. 편안함은 사람을 무디게 만들지만, 위기는 사람을 날카롭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좋아한다.
“편안함이 계속되면 창의성은 말라버린다.If life is too comfortable, creativity may dry up." -Neusnar-
결국 발전은 긴장에서, 그리고 도전에서 나온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안정된 길이 정말 ‘좋은 길’인지, 스스로 자문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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